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르키예-아르메니아 관계 (문단 편집) === 21세기 === 2007년에는 튀르키예가 화해의 제스쳐로 악다마르 섬 아르메니아 교회를 일부 고쳐준 일이 있는데, 이게 되려 아르메니아에서 문제가 되었다. 당시 아르메니아 극우들은 악다마르가 아닌 악타마르 섬이라는 아르메니아어로 섬 이름을 바꾸고 이 섬 교회나 튀르키예 전역에 있는 아르메니아 교회 유적지들 소유관리권을 양도하라는 요구를 더하게 된다. 그러자 튀르키예 극우들도 울컥하면서 화해 분위기를 작살나버렸다고 한다. 이때, 튀르키예 카르스시에선 거대한 손조각을 조각하면서 평화의 손이란 이름으로 아르메니아와 평화를 기념하는 걸 만들었더니만 극우들이 와서 반발하는 통[* 카르스 학살 당시 피해자 유족 후손들까지 와서 이 조각가를 죽인다고 분노했다.]에 미처 완성을 못하고 조각가가 한동안 피해다니는 신세가 되어 몇 달이나 방치되기도 했었다. 나중에 완성은 했지만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며 쓸쓸히 방치되어 있다. 더불어 몇몇 튀르키예 극우들이나 쿠르드족이나 극단적인 무슬림들이 보란듯이 아르메니아 교회(튀르키예 전역에 이런 버려진 채 관리되지 않는 교회들이 꽤 많다)에 총질을 하거나 훼손하는 일이 벌어졌고 쿠르드인 저항세력이 이런 곳에 숨어드는 통에 튀르키예군 전차가 아예 교회를 포격하던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동부 지방에 가득남은 기독교 유적 훼손을 튀르키예 정부가 막은 게 90년대부터였다. 교회 유적이 쏠쏠한 관광자원이라 그런 면도 있지만... 튀르키예 전역에 워낙에 많은 기독교 유적 덕에 알려지지 않은 시골 교회 유적들은 이슬람 차미[* Çami, [[모스크]] 또는 마스지드라고 불리우는 이슬람 성원.]가 된 곳이 많다.[* 예수나 인물 그림만 지우고 십자가가 새겨진 벽을 놔두고 그 모습 그대로 이슬람 성원으로 쓴다.] 덕분에 이런 곳 관리양도 요구에 튀르키예 극우들이 화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09년 튀르키예에서 다시 화해를 시도하고 2010 월드컵 예선전에서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가 맞붙게 되자 터키 총리가 아르메니아를 방문하기도 하며 학살도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튀르키예에서도 학살을 조금 인정해왔던 것도 있기에(앞서 언급하듯이 학살이 아예 없었다고 하진 않는다. 그 수가 부풀려졌다는 것과 아르메니아도 학살했다고 따지는 게 있다) 아르메니아에서 반응은 그리 환영하는 게 아니었다. 튀르키예의 아르메니아 원정 예선경기에서 아르메니아 극우들은 튀르키예를 비난하는 시위도 벌인 바 있는데 경기는 튀르키예의 2:0 승리라서 아르메니아의 기분은(...) 그래도 튀르키예랑 이렇게 공식적인 축구경기를 가지는 거랑 달리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아예 경기를 치루지 않을 정도로 더 사이가 나쁘다. 하지만 아르메니아에서도 아르메니아인들이 1915년 발생한 튀르키예인 학살 사건(반 사건,사실 튀르키예인보다 쿠르드인들이 더 많이 죽은 사건이라 이들이 격분하여 아르메니아 학살에 뛰어든 원인 중 하나)을 인정 및 사죄하는 등 일부 양보하면서 약간 분위기가 좋아질 듯했고 2010년 9월 19일 튀르키예 악다마르 섬에선 95년 만에 추방된 아르메니아인들의 입국을 허락하며 악마다르 섬 대성당에서 예배를 드리게 허용했다. 이 자리에는 5천 명이 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참석했으며 200명이 넘는 내외신 기자들이 취재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D0%90%D1%85%D1%82%D0%B0%D0%BC%D0%B0%D1%80_%D0%A1%D1%83%D1%80%D0%B1_%D0%A5%D0%B0%D1%87.jpg]] 아르메니아 악다마르 대성당 사실 이 예배는 2010년 4월 24일에 가질 예정이었으나 아르메니아에서 아르메니아 학살 추모일로 기리는 날짜라서 튀르키예 극우들--과 아제르바이잔--이 반발하여 무기한 연장된 끝에 9월에서야 이뤄진 거였다. 921년 경 아르메니아 왕 기가크 1세가 세우게 했다는 이 대성당은 아르메니아에서 손꼽는 성당으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1915년 이후로 아르메니아인 추방으로 오랫동안 버려져왔다. 이후로 이곳에서 쿠르드인들과 독립 문제로 벌어진 총격전으로 성당 여기저기에 총탄 자국이 가득했으며 문이 없고 벽 한 곳이 큰 구멍이 뚫려있었으며 아예 천장 한 쪽은 폭발하여 뻥 뚫린 상태로 훼손이 심했었다. 게다가 1951년에는 튀르키예 측이 아예 박살내려고 했다. 그런데 이걸 결사반대하며 막은 인물들이 아르메니아인이 아닌 동부에 거주하던 쿠르드인 지식인이라는 사실. 그중 하나인 쿠르드계 튀르키예 소설가인 야샤르 케말(Yaşar Kemal, 1923~2015)은 [* 바람부족의 연대기같은 작품이 한국에서도 정식번역되어 나왔다.] 문화와 역사를 파괴하는 건 인류 역사에 둘도 없는 죄악이라며 이 성당의 파괴를 반대했다. 참고로 이 케말은 군부를 비난하고 쿠르드인 차별과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대하여 독설을 퍼부으며 온갖 풍자소설을 쓰다가 오랫동안 투옥당하고 무척 시달림을 받았지만 양심있는 작가로 튀르키예 진보층의 격찬을 받았다. 어쨌든 겨우 파괴는 막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다가 지난 2007년에서야 튀르키예 측이 수리했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갈등으로 다시 교회 예배는 불허되었다가 3년 만에 예배문제를 허용한 것이다. 아르메니아 극우들은 악다마르 섬(Akdamar Island-터키어는 Akdamar Adası)이 튀르키예 이름이니 아르메니아 이름인 악타마르 섬 (Aghtamar,Akhtamar 아르메니아어는 Աղթամար {{{[ɑʁtʰɑˈmɑɾ]}}})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가 튀르키예 측에게 그런 헛소리라면 앞으로 아르메니아인 출입금지하겠다는 엄포에 굴복해야 했다. 아르메니아에선 서로들 오려고 난리가 나면서 3만여 명이 신청했으나 튀르키예 측은 수를 줄여서 예배를 보게 했다. 그리고 교회에 십자가를 일절 세우지 않게 했는데 이에 실망하는 아르메니아에게 튀르키예는 예배를 망치고 싶냐고 못박았는데, 이 섬 주변은 쿠르드인들이 가득하며 튀르키예인들도 보수적인 이슬람 신앙을 가진 이들이 많기 때문에 300명이 넘는 튀르키예 군경이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튀르키예 극우들과 쿠르드인들의 분노 어린 반발이 가득했고 무엇보다 [[아제르바이잔]]도 그런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 카라바흐에 남겨진 이슬람 사원을 멋대로 교회로 개조한 주제에 튀르키예에게 무슨 염치로 요구하냐면서 분노했다. 아예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당시 튀르키예 대사를 소환하여 실망이라는 뜻을 보여서 튀르키예 안에서도 아제르바이잔 기분을 생각하자는 의견도 엄청났다. 이런 가운데,아르메니아 정교회 주교는 이 예배를 매해 볼 수 없냐고 간청했으나 튀르키예 측은 장담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기에 결국 화해 제스처라고 하기에는 여러 말이 많은 예배였다. 그렇긴 해도 2011년 튀르키예에서 아르메니아 측 요구대로 이 교회 꼭대기에 십자가를 세워주었다. 물론 자국 극우들과 아제르바이잔의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2013년부터 튀르키예가 매해 예배를 허용하면서 거의 100년 만에 아르메니아 소년들이 와서 세례식을 이 성당에서 한 바 있다. 2014년도 예배가 허용됐다. 물론 아제르바이잔과 극우파 반발이 여전히 거셌지만 말이다. 그리고 위에 서술한 대로 디야르비크르에 있는 수르프 기라고스 아르메니아 성당도 2013년에 복원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